마우이 여행 2틀차,
하와이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와이키키 중심가는 돈 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하느라 삐까뻔쩍한데
그 지역을 조금만 넘어가면 호노카와 보이라는 영화 느낌이 낭낭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영화 특유의 필터를 뺀 시골 섬동네랄까.
조용한 시골이다. 벌레도 많고.. 섬이라 그런가 벌레는 또 겁나 크다.
그 옆동네 섬인 마우이는 더 시골인데다가 시간이 더 천천히 가는 느낌이었다.
비키니에 칵테일보다는 설렁설렁한 알로하 셔츠에 미국 특유의 싸구려 쓰레빠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
그래서 그런가 마우이는 왠만한 엑티비티 없으면 시간이 잘 안 간다. 할게 별로 없어서.
우리도 여행 전 미리 가능한 액티비티를 찾아보고 예약했다. 3일 중 하루는 스노클링으로 아침부터 오후까지 보내기로 했다.
이곳저곳 찾아보다 여행 시작전에 스노클링 회사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종류가 여러가진데 비슷비슷하니 잘 알아보시고 예약하시길.
나는 평소에 그닥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지는 않는데 (안에서 뭐 하는걸 더 선호함)
그래도 하와이까지 가는데 스노클링은 한번 해야지라는 동생 말에 넘어가 이번에 스노클링에 도전해봤다.
스노클링은 마우이에서 유명한 Molokini crater라는 곳에서 하는데 그곳까지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저 crater 안쪽에 물고기들도 많고 파도가 심하지 않아 스노클링에 딱이라고 한다.
아침 출발이기때문에 일찍 일어나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dock으로 출발해야 했다.
3시간 시차를 이겨내지 못해 아침 5시에 눈뜨고 저녁 8시만 되면 졸려서 골골댔다.
그나마 다행힌게 3일 내내 새벽부터 움직이는 일정이라 스케쥴을 소화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항구에 차를 대고 우리 배를 찾아서 간다. 여러 팀이 동시에 움직이는지 배도 여러 개라서 잘 찾아가야 한다.
배에 타기 전에 safety waiver를 작성하는데 파도가 심하지 않으면 turtle town도 들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파도가 심해서 못갔다.
Turtle town은 커녕 파도가 거칠어서 배가 엄청 흔들렸다.
나는 멀미를 거의 안 하는 편인데도 미식거리기 시작해서 친구의 멀미약을 급하게 하나 얻어먹었다.
우리도 전날 혹시 몰라 급하게 산거였는데 안샀으면 큰일 날 뻔했다.
친구는 평소 배랑 관련된 일을 하는데 배멀미를 어찌나 심하게 하는지 전에는 어떻게 지냈나 싶을 정도였다.
- 일어나세요 용사여
- 그거는 큰 배라 안흔들려!
- 아하~
다행히 우리 배에서 토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배를 타고 나가서 빌려주는 스노클링 장비를 끼고 물에 들어가서 놀면 된다.
평소에 스노클링을 즐기는 동생은 본인 장비가 있었고 나는 그냥 빌려주는 기본 장비를 착용했는데 별로였다.
코까지 막혀있는 고글이었는데 나는 수영도 하고 물을 무서워하는 편도 아니라 오히려 더 불편했다.
내꺼를 산다면 고글만 있는 걸로 사야지. (그러나 이 이후 스노클링을 한적이 없다.)
배에는 안전요원/직원 2명이랑 캡틴 1명이 있었는데
한참 수영을 하고 올라와서 자유시간에 배에 남아 있던 직원들이랑 친해졌더니 돌아오는 길에 계속 공짜 술을 줬다.
다시 멀미에 쓰러진 친구는 알콜 냄새조차 맡기 싫어했고 동생은 쟤네가 만들어준 칵테일 맛없어하면서 거부했다.
일부러 챙겨주느라 더 줄까? 라고 물어보는 게 고마우면서도 딱히 맛이 없어서.. 미안하지만 노.
점심은 배 위에서 샐러드랑 샌드위치였다. 나름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수영하고 나면 뭐든 맛있지. 오후에는 호텔로 돌아와 다들 샤워하고 기절했다.
잠시 쉬고는 저녁을 먹으러 리뷰가 엄청 좋다는 멕시코 음식적으로 갔다.
Acevedo's Hawaicano cafe.
하와이안+멕시카노를 합친 단어인가보다.
정말 맛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매우 살갑고 쿨한 성격이었는데 자기는 토핑 갖고 장난치는 사람이 아니라고
재료를 아주 팍팍 넣어서 맛있게 만든다고 자랑스럽게 얘기 하셨다.
아저씨가 강력하게 추천하시는 세비체랑 내가 좋아하는 종류를 몇개 시켰는데 세비체가 진짜 맛있었다. 존맛.
코로나 이후에 아직 장사 하시는지 모르지만 마우이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가서 먹을 거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carnitas plate. 다 같이 나눠 먹으려고 시킨 super fries. 위에 토핑이 산처럼 쌓여있다.
하와이에서 이정도 급의 멕시칸 음식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양도 엄청 많고 아저씨 말대로 토핑도 엄청나게 올려주신대다가
먹는 도중에도 주방에서 나오셔서 "또띠야 더 구워줄까? 사워크림 더 줄까?" 하면서 물어보셨다.
마우이에서 정말 유명하다는 비싼 로코모코도 먹어보고 쇼핑몰에서 나름 리뷰 좋던 타이 음식도 먹었지만
마우이 여행을 통틀어서 이 집이 제일 맛있었다. 마우이 여행을 준비하느라 이 글을 보셨다면 완전 추천한다.
마우이에서 바쁜 3일을 보내고 오아후 섬으로 넘어갔다.
호노룰루로 유명한 섬. 여기에 와이키키가 있다.
오후 비행기라 저녁에 도착했고 일찍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내내 뒹굴거리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나왔다.
동생이 맛있다고 전에 얘기했던 포키. 새우랑 다른 하나는 스파이시 마요 투나였다.
저 새우 사이즈 좀 보세요! 가격 대비 양도 많고 맛있었다.
점심이 워낙 든든해서 저녁은 간단하게 먹고 동생이랑 둘이서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Life라는 영화를 봤는데 엔딩이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도 중간까지는 진짜 재밌게 봤는데...
엔딩이 너무나도 예상되는 빌드업이라 설마 이건 아니겠지 했는데 역시나 그렇게 끝났다.
주말 아침, 브런치를 만들어 먹었다.
전날 같이 먹을 빵도 사왔는데 창문 근처 카운터에 두었다가 개미들의 어택을 받아서 먹지 못했다.
반나절도 안되서 개미들이 이렇게 꼬이다니 무서운 동네.
브런치를 먹고 오후에 parasailing을 하러 갔다. 이것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비치/포트 쪽에 가서 체크인하고 손목에 띠 차고 이쪽으로 타세요~ 하는 곳에 가서 배를 타면 된다.
멀미약을 미리 먹는게 좋다.
배라기보다는 모터보트 수준인데 정말 흔들림이 장난이 없다.
파도가 심하기도 했는데 배가 작다 보니 온몸이 다 흔들린다.
파도가 철썩철썩 치는 와중에 순서대로 일어나 자리를 바꿔야 한다. 균형감각이 없으면 힘들 수 있다.
나이 많으신 분들은 직원분들 도움을 받아서 움직였다.
우리를 태워줄 낙하산. 알록달록.
추가 요금을 내면 직원이 사진이랑 비디오도 찍어주는데 우리는 동생 고프로를 들고 가서 직접 찍었다.
나중에 비디오를 같이 보는데 공중에 뜨기 전부터 무서워서 온갖 근심과 걱정이 몰려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 저런 얼굴로 설명을 들었구나. 안전벨트야 나를 살려줘.
직원이 설명을 끝내고 줄을 놓는 순간 붕~하고 위로 올라간다.
워낙 순식간이라 무서울 틈이 없었다. 막상 올라가면 신난다.
둘이 완전 신나서 계속 수다 떨고 노래 부르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 비디오를 보는데 오디오가 시끌시끌했다.
밑에는 우리 보트가 보이고 멀리 와이키키 시내가 보인다.
내려올 때 사람들을 물에 빠트리는데 우리는 바로 다음 스케쥴이 있어서 미리 빠트리지 말라고 얘기를 했다.
(미리 말하면 배 위로 내려준다)
얘기할 때는 알았다고 하더니 점점 내려가는데 보트랑 전혀 가까워질 낌새가 아니길래
다급하게 아저씨 한데 No water! No!! 를 외쳤다.
싫다고 이 쉐끼야!!
분명 봤으면서 씩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고는 바로 물에 빠뜨렸다.
이때 찍힌 동영상에는 내가 온갖 욕을 다해서 동생이 비디오 보다가 귀가 터지는 줄 알았다고...
마지막 다이빙 빼고는 꽤 재밌는 경험이었다.
중간중간 낙하산이 훅 떨어질 때마다 심장도 같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많이 무섭지는 않았다.
쫄딱 젖어버려 저녁에 만나기로 했었던 친구한테 급하게 SOS 연락을 해
친구 집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미리 챙겨놨던 옷으로 갈아입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식당이라기보다는 펍 같은 곳이 었는데 아히투나가 정말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하와이 코나커피를 한잔씩 한 뒤 친구를 다시 만나 저녁을 먹고 하와이의 나잇라이프를 즐기러 나왔다.
완전 재밌게 놀 거라면서 클럽을 3군데나 대리고 가줬는데 3 군대 다 실패해서 동생이랑 친구는 오늘 뭐가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
왜 이런날 왔냐고 나한테 뭐라는 애들.. 내 탓하지 마..
나는 이미 컨디션도 바닥이라 집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터덜터덜 끌려다니다가 친구 집으로 돌아왔다.
둘은 배가고프다며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기절했다.
쟤네 둘다 코를 심하게 골아서 같이 못 잔다.
아침에 여유있게 일어나 브런치 경 쇼핑을 하러 알라모아나 몰에 갔다.
한참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커피를 마시러 푸드코트에 갔는데
너무너무 귀여운 남자아이랑 할머니가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주문하려고 기다리는건가? 나도 주문해야되는데 새치기 하면 안되니까
이미 주문했냐고 영어로 물어봤더니 할머니께서 일본어로 뭐라 뭐라 대답을 하셨는데 순간 못 알아 들었다.
내 뇌 어딘가 저장되어 있는 일본어 나와.
"이쪽에서 주문 할 수 있어요",라고 일본어로 알려드리니 "아이스크림..."이라고 하시면서 나한테 돈을 주셨다.
또잉.
제가 직원은 아닌데. 순간 당황해서 돈을 다시 드려야 하나 주문해 달라는 건가 잠시 고민을 하는데
애기가 옆에서 아이스크림... 이라며 쳐다보는 게 너무 귀여웠다.
그래 내가 도와줄께! 내가 너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겠어!!
- 나: 아이스크림 하나요
- 직원: 무슨 맛?
- 나: 뭐 있어요?
- 직원: 바닐라, 초콜릿, 녹차, swirl
- 나: 오키오키. 할머니 아이스크림 맛이 바닐라, 초코, 녹차..
Swirl이 일본어로 뭐지. 한국어로도 뭔지 모르는데. 믹스..콤보..???
엄..엄.. 거리면서 뇌를 빡시게 굴리고 있는데 애기가 옆에서 쪼꼬! 를 외쳐서 초콜릿으로 주문했다.
애기는 콘을 달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옆에서 컵으로 줘,라고 하셔서 콘을 컵에 엎어달라고 했다. (솔로몬 급)
할머니가 고맙다고 얘기하시는데 옆에서 애기가 응! 아리가또!라고 하는 게 정말 귀여웠다. 뿌듯.
커피 사는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냐는 동생한테 방금 있던 일을 말해줬다. 쏘 큩.
돌아가는 날 공항으로 나가면서 본 무지개.
짧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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