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프라하로 가는 날.
새벽에 울리는 알람에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온몸이 쑤셔 끙.
여자애중 한명이 pub crawl에 갔다가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내 알람 때문에 깨지 않았을까 걱정되서 후다닥 알람을 껐다.
해는 뜰 기미가 없고 피곤한 몸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몸이 힘드니까 그냥 꿈쩍도 하기 싫은 그 기분.
생각한거보다 호스텔 침대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나가기 싫어.
비행기표가 기다리고 있으니 가야지.
아마 No show penalty만 없었더라도 프라하 안가고 그냥 마드리드에서 남은 일정을 보내지 않았을까.
피곤했고 또 그 정도로 마드리드가 좋았다.
준비하고 아직 깜깜한 밖을 보면서 시간을 확인했더니 아침 6시 반.
놓고 가는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고 짐을 챙겨서 나왔다.
키를 반납하고 디파짓 돈을 돌려받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기위해 렌페를 타러 갔다.
호스텔에서 솔 광장까지 걸어가는데 어제 몇번 돌아다닌 길이라고 벌써 익숙한걱 같다.
렌페를 타러 지하로 내려가야 하니 이놈의 짐을 들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있대요 흑흑)
다행히 운행시간이 맞아서 힘 안들이고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
어제 한번 타봤다고 아침에 정신도 없는데 나름 smooth하게 표를 뽑고 플랫폼을 찾아갔다.
가격이 2.6유로, 3불정도밖에 안하다니. 여행자들한테는 고마운 시스템이다.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어제 챙겨왔던 하몽 샌드위치를 먹었다.
솔직히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버려버릴가 잠깐 고민했는데 얼마 먹지도 않은 음식을 버리자니
돈도 아깝고 음식 낭비에 양심이 찔리고 벌받을 것 같고, 반억지로 챙겼는데 아침에 먹으니까 완전 맛이 있었다.
어제는 술을 좀 많이 먹은 상태라 맛을 제대로 못느꼈었나보다.
뜨끈한 수프가 먹고 싶기는 했지만 간단한 아침으로 하몽의 진한 느끼함과 짠맛이 빵이랑 굉장히 잘 어울렸다.
안에 야채도 하나 없는 샌드위치를 '맛있어 맛있어' 거리면서 플랫폼에 서서 열심히 먹었다.
커피나 티가 있었다면 펄펙했겠지만 우선은 어제 사두었던 물이랑 먹었다.
Aeropuerto!
의자에 앉아서 잠깐 졸다 잠깐 구경하다 했더니 아무런 문제 없이 공항에 잘 도착했다.
검사 통과하는데 한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널널하게 남아서 맥도날드에 갔다. 빵은 먹었으니까 커피를 마셔야지.
메뉴를 열심히 보는데 아무리 봐도 아이스커피가 없었다.
나는..아이스 커피를 원한다..
다른 카페에도 갔는데 아이스커피가 없다. 왜죠!!
갑자기 전에 유럽에서 백팩킹을 하고 온 친구들이 유럽은 아이스커피를 안먹더라 라고 했던게 생각났다.
스에상에 정말 아이스커피가 없다니. 그냥 얼음에 부어줘. 아주 잠깐 슬펐다.
아이스커피 대신 그냥 아침메뉴에서 햄샌드위치랑 오렌지쥬스를 먹었다.
맥도날드에 앉아서 일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시간을 보니 8:30AM.
공항 유리 천장을 통해서 해가 점점 뜨고 있는게 보였다. 이제야 해가 올라오다니.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는 얘기도 충격적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근데 내가 속터져서 안될지도..
두시간 정도 되는 비행이면 뜨고 얼마 안있다가 다시 내리니까.
다행히 이번 비행기에서는 큰 문제 없이 프라하에 잘 도착했다.
프라하에 도착해서 여권이랑 서류를 준비하는데 아무리 걸어가도 이미그레이션이 안나왔다.
왜..없지!??? 결국 걷고 걸어서 baggage claim까지 왔다. 뭐야 나 불법입국이야?
내가 줄을 건너 뛰었나. 오른쪽으로 가야됐는데 왼쪽으로 돌았나.
근데 이미 밖으로 나와버린걸 어떡하겠누. 그냥 짐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미 스페인에서 입국심사해서 따로 검사가 없던것.
그러다 문득 떠오른게, 나 프라하 입국 도장 없어. 여권에 모으고 싶은데 도장 없어! 엉엉.
입국심사하고 도장 찍어줘라!!
안녕 체코, 안녕 프라하.
프라하에서 유로도 사용이 가능한데 왠만하면 코룬으로 바꾸는게 더 좋다고 해서 환전소를 찾아놨다.
우선 버스 티켓을 사야되는데 이거는 또 유로를 안받아.
어떤 블로거가 써놓은 대로 갖고 있던 유로 동전으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고 잔돈을 코룬으로 받았다.
이거 정말 유용한 팁이었다. 환전율 매우 굿임.
공항버스는 60 czk인데 시내에 있는 메인역에 내려준다. 버스타면 한방임.
버스 정류장도 공항에서 나오면 금방 찾아갈 수 있다. 매우 추천하는 방법.
내가 정말 유럽에 와있구나! (스페인도 유럽임..)
다리를 봐! 가을 단풍에 물든 나무들을 보라고!!!
혼자 신이 잔뜩 나서 창문밖을 열심히 찍었다.
메인역에서 내려 호스텔 주소를 쳐봤더니 20분 정도라고 나왔다.
오. 걸어갈만 한데?
이것은 바보같은 선택이었다.
우선 프라하 길바닥은 돌바닥임. 세상에. 이거야 말로 디자인만 신경쓴듯한 돌바닥.
프라하는 바퀴 4개로 갔다가 3개로 돌아오는 동네라더니 진짜 캐리어 끌고 가는게 너무 힘들었다.
어디 틈사이에 박혀서 캐리어 박살날까 무서워서 팍팍 땡기지도 못했다.
거기다 언덕!! 이놈의 언덕!!
그나마 마드리드에서 쌩쑈를 하고 샀던 유심이 다행히 프라하에서도 사용 가능이라 네비를 켜고 열심히 쫓아갔다.
예산 짤 때 프라하 유심도 하나 더 사야됬었는데 19유로 정도 세이브했다. 히히. 이걸로 더 먹어야지.
마드리드는 더웠다. 근데 프라하는 추웠다.
내리자마자 자켓을 하나 더 꺼내서 껴입고 걸어가는데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어쩌라는거냐.
돌바닥 언덕길 + 15kg 캐리어 등산하는 기분. 네비 안되서 지도 보고 갔으면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울었을 지도.
어제 3차 까지 달렸다고 먹은 칼로리 다 빼라는가보다.
귀여워!
노란색 횡단보도, 이걸 뭐라고 해야되더라, 신호등..?
누르라니까 눌러야지. 밑에 글을 뭐라고 써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이건 백프로 누르고 건너는거야.
호스텔에 도착할때까지 언덕을 걷고 걸어서 간신히 도착했다.
우버가 있는거 같으니 먼길을 떠나시는거라면 우버를 타시길..
이번 호스텔은 Sophie's hostel.
여길 고른 이유는 침대가 다 따로 있다! 2층에 안기어올라가도돼!
거기다 사진으로 봤을때 너무 깔끔해보여서 큰 고민없이 골랐다.
침대밑에 큰 storage box가 있어서 캐리어 채로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내가 사용할 침대 빼고 이미 다 사용 중이었다. 짐을 정리하는데 한명이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잠깐 얘기를 했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여기서 마라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프라하에서 마라톤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다른 나라에서 있는데 여기서 준비 한다고.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어쨋든 굿럭이라고 웃고 나는 씻으러 갔다.
땀을 너무 흘려서 샤워를 해야해.
기숙사 형식보다는 원룸 아파트를 꾸며 놓은 듯한 곳이었다.
방안에 침대가 있었고 밖에는 키친/다이닝이랑 화장실이 입구쪽에 있었다.
새벽에 누가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면 시끄러울수 있는데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있어서 좋았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와서 침대에 누워 오늘 뭘 하기로 했었나 일정표를 꺼내봤다.
이날의 메인 이벤트는 오페라 공연.
프라하게 가는 비행기 티켓을 사자마자 뭘 하면 좋을까 찾아보다가
오페라 티켓이 (미국에 비해) 겁나 싸다는걸 알게되서 국립 오페라를 미리 예약했다.
'좌석 겁나 좋은거로 고를꺼야, 앞쪽에 앉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가능한 공연을 알아봤더니 이날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헉, 공연이 하나. 좌석은 뭐가 있지 하고 봤는데 이미 VIP섹션은 거의 다 좌석이 빠진상태.
구석에 앉자니 잘 안보일거같고 너무 위쪽으로 가자니 (고소공포증..) 그것도 별로 일거 같고.
계속 고민고민하고 이걸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다가 까먹었다.
그러다 몇일뒤에 다시 확인했는데 발코니 석 정중앙 자리가 나왔다!
왁! 이거 사! 빨리 돈 갖고 가라고!
바로 크래딧카드를 꺼내서 예약했다. 티켓을 미리 뽑아서 챙겨왔으니 문제없겠지!
프라하에 도착한 날 저녁에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날 아니면 오페라 공연이 없었다. 흑흑.
다음날은 무슨 모던예술공연인데 내 취향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없는 체력까지 끌어모아 보러가겠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밤에 볼 오페라 공연을 위해 잠깐 누워서 쉬기로 하고 침대에 뻗었다.
좀 자려고 했는데 이놈의 예민한 몸뚱이는 바뀐 잠자리에서 낮잠도 제대로 못잔다.
프라하에 도착 했을때만해도 배가 엄청 고팠었는데 샤워를 하고나니 피곤이 몰려와서 잠깐 허기가 가셨다.
이제는 잠깐 쉬고 일어났다고 위가 다시 난리법석을 부리기 시작. 저녁을 먹으러 가야지!
솔직히 호스텔을 예약했을 때는 같이 묵게 되는 사람들이랑 친해져서 같이 저녁도 먹고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애들이 낯을 많이 가리는지 중국에서 왔다는 여자애들 두명은 처음에 인사만 했는데도 깜짝깜짝 놀랐다.
안잡아먹을게 안물어.. 놀라지 말아라..
오후와 저녁 사이, 저녁을 먹으러 준비하고 나가야지.
저녁을 먹고 오페라를 보러가야 했기 때문에 챙겨온 셔츠를 입고 추우니까 부츠랑 가죽자켓을 챙겨입고 나왔다.
제대로 신어 본 적이 없는 부츠와 겨울에 손네 꼽힐 정도로 입어본 가죽자켓!
여기는 가을이라 입고 다녀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덥지도 않고 좋지! (신남).
오늘의 디너 메뉴는 체코 요리(라고 들은) 스비치코바를 먹으러 갔다.
호스텔에서 가까운 곳의 식당을 미리 알아봤기 때문에 네비에 식당 이름을 넣고 걸어갔다.
몇시간 전까지만해도 이 돌바닥이 세상에서 제일 꼴보기 싫었는데 이제는 막 분위기가 있고 그른거 같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구나. 몸이 편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마구 넘쳐 유럽에 대한 동경과 로망이 막 올라오고 있나보다.
식당은 나름 아기자기 분위기가 있어서 좋았다.
주문을 할때까지만 해도 기대에 부풀어 나는 여기서 먹방을 찍고 가겠다는 비장함을 품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슬프게도 음식 자체는 그냥 그랬다. 아 친구들이 체코 음식 맛없다고 했을때 믿을껄 그랬나.
스비치코바
(이름만 들어서는 러시안 체조선수 이름같다..)
이 소고기 요리는 참 이도저도 아닌 묘한 요리였다.
'아 뭐 이런걸 먹어' 의 수준은 아니지만 '와 진짜 맛있다' 라는 것도 없다. 두번은 안먹어도 되는 맛.
나는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발란스같은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여기는 발란스가 꽝이야.
고기요리에 야채가 없고 심지어 고기 2 빵8의 비율. 나는 저거의 반대를 원한다고.
무슨 소고기 요리라고 하더니 순 찐빵 밖에 없었다. 체코 덤플링이라는데 그냥 찐빵의 식감이었다.
특히나 고기가 너무 조금이라 음식 잘못 나온줄. 아니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는거야?
누가 내 고기를 다 먹었나. 한 세입먹었는데.. 고기에 달달한 윕크림은 나의 취향과 매우 동떨어진 조합이었다.
쒸익.. 프라하 음식 다 맛있다던 블로그 다 나와 쒸익..
슬픈 와중에 그나마 다행이었던것은 맥주. 맥주는 정말 맜있었다.
나는 평소에 맥주를 크게 즐기지 않는다. 특히 IPA종류.
곡식향이 너무 심한 걸 좋아하지 않고 쓴맛을 싫어한다.
아시아 맥주는 또 너무 맹맹한 감이 있지. 쓸데없이 까다롭다.
근데 여기 흑맥주를 딱 마시자마자
왜 사람들이 프라하에서 맥주를 물먹듯 마셔야 된다고 했는지 알겠더라.
스미제니 씨르, 치즈 튀김?, 같은 요리인줄 알고 메뉴에서 시켰는데 이거 아닌거같아.
주문할때 오더 받으신 언니한테 분명 물어봤었는데 미스커뮤니케이션인가보다.
일하시는 분들 두분다 영어를 거의 못하셔서 걱정은 했지만 잘못된 요리를 주문했어.
나름 이런저런 치즈를 경험해봤는데 이거는 꾸리꾸리한 치즈를 deep batter fry한 요리였다.
거기다 밑에는 감자튀김 잔뜩. 타르타르 소스에 찍어먹으라고 나왔는데 느끼함이 맥주로도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열심히 먹었는데 저놈의 찐빵이랑 치즈튀김은 질려서 다 못먹겠더라.
감자만 조금 더 집어먹다가 포기했다. 맥주나 마시자 꿀꺾꿀꺾.
이렇게 요리 2개랑 맥주 한잔을 마시고 USD13정도 나왔다.
엄청 싸다고 이정도 가격에 먹으면서 코치코치 따지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였다.
길거리에서 $1짜리 타코를 먹든 하이앤드급 다이닝에서 필레미뇽을 먹든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하기를 바란다.
이날의 저녁은 맥주를 빼면 정말 영 아니었다. 슬프다.
내가 주문에 실패한건지 체코 음식이 전체적으로 맛이 없는건지 저 식당이 별로인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선은 기대치를 낮춰야한다고 생각하며 식당을 나왔다.
여기 풍경은 너무 아름다운데 음식이 계속 이렇게 음식이 안맞으면 이것이 나의 마지막 프라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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